'청년'이라는 이름으로, 숨겨지는 것들. 그럼에도 청년이라는 이름이 필요하다면 안녕하세요 밍똥입니다. 💩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고 있는데 건강히 잘 지내고 계신가요?
이번 주에 저는 "왜 청년활동가인가?"라는 고민을 안고 자료들을 읽어보았습니다. 그동안 저에게 '청년-'이라는 수식이 붙은 일들은 막연히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는데요, 청년 활동가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아요. '청년-' 수식은 매력을 더하는 전략일까요? 그게 아니라면 왜 그냥 활동가가 아닌 '청년' 활동가일까요? 활동 주체의 연령이 행정상 청년이어서? 아니면, 청년의 문제를 해결하기 때문에? 이런 질문들을 가지고, 제가 찾아본 내용을 함께 공유하고 싶습니다.
🙄 '청년-' 수식에는 여전히 과거의 자기계발서적 청년상이 내재한다?
- 이렇듯 청년이라는 이름은 단순히 청년 세대라는 객관적 사실만을 나타내는 게 아니라, 여전히 그 이름에 걸맞도록 요구되는 열정과 포부, 희망 등 주관적 내용을 동시에 내포한다. 때문에 어떠한 용어에 '청년-'이 붙는 명명법은, 의도하든 의도치 않든 그 특유의 효과를 창출하며 이로 인해 끊임없이 '청년'이라는 이름을 호명하며 담론의 자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 사회에서, 그렇게 만들어지고 있는 청년의 자리는 어디인가? 과하게 넘치는 담론과 말들 속에서도, 그럼에도 현실은 청년들의 사회적 위치를 '자리없음'으로 해석되도록 한다.(장봄, 천주희, 2014) / 이영롱,명수민(2014)
- 사회적 섹터에는 이전에 비해 훨씬 다양한 투입 자원과 관심이 팽창되고 있다. 그런데 그 속에서 재현되는 ‘청년’의 이미지는, 지난 몇 년 간 청년들을 겨냥하는 자기계발서에서 상정하는 주체들과 크게 다르지는 않아 보인다. 자신의 길을 명민하게 설정하고, ‘청년’다운 열정과 창의성을 갖고서 나아가는 ‘개척자’정신, 청년 활동가에게 요구되는 것도 그런 것이다. (...) 예컨대 최근에 서울시의 청년 일자리 정책에서 쓰이고 있는 ‘청년혁신활동가’ 등의 용어는, 청년들로 하여금 노동 영역 안에서 ‘노동자’가 아닌 ‘사회 혁신’과 ‘창의성’을 지닌 ‘혁신활동가’라는 새로운 존재 양식으로 나아가도록 만든다. 그런데 이때의 ‘혁신’,‘청년 활동가’ 등의 용어는 사회의 변화를 위한 개선적인 방향을 가져오기보다 “청년의 문화적이고 창의적인 아이디어, 자발성, 세대의 열정이 어떤 식으로든 섞이면 나올 것 같은 파생상품”을 기대하며, 노동을 다른 형식으로 미화하는 낭만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 우리는 이러한 용법이 실제로 어떤 면에서는 소모 혹은 이용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고 있다. / 이영롱,명수민(2014)
🙄 '청년-' 수식은 그 이미지를 이용하는 통치 기제로 작동한다?
- 주목할 것은 이 ‘다른 삶’이 텍스트 안에서 ‘더 나은 삶’으로 부각 되는 방식이다. 활동가들은 주변의 다른 청년들이 “경제력에 대한불안”을 안고 “정말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묘사하면서, 상대적 만족과 “안타”까움 이라는 정서를 표현하고 그들과 비교하여 자신의 삶을 긍정하는 구별 짓기와 비교우위의 서사를 보인다(서울시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 2015b, 124-126). 이러한 비교의 방식은 ‘희망적인 내러티브로 문제를 해결하고 극복’하는 청년을 평가하는 외부적 시선과 그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 그렇다면 서울시가 ‘활동하는 청년’ 담론을 통해 이들을 전제하고 표상하는 방식은 어떠한가? (...) 이는 모두 ‘나의 필요’라는 중심 원리에 의해 정당화되면서 욕망을 축소하는 삶을 개인의 선택 영역으로 전환시키고, 나아가 청년에게 스스로의 인생을 계획하고 결과마저도 책임지는 ‘기업가적 주체’로 변모할 것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요컨대 청년에 대한 마을공동체 사업의 통치 전략이란 ‘나의 필요와 선택’이라는 빈약한 자유를 통해 작동하면서 대안적 일자리라는 명목으로 청년을 마을로 유입시키고, 그 삶의 결과도 스스로 짊어지는 주체로 생산해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내가 먼저 춤을 춰야’ 하는 자발성을 수취하는 논리가 되면서 청년을 ‘사회혁신의 주체’로 호명하는 당위성과도 마찰 없이 연결된다.
- 청년허브의 사업 방향을 규정하는 발화는 청년이 능동적인 해결 주체로서 스스로 지금의 조건과 상황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을 자명한 사실로서 제시한다. 해결 주체로 나선다는 것은 특정한 사회적 문제의 해결을 외부에 요구하는 것, 예컨대 효과적인 실업 대책 마련과 청년 복지 개선책의 강구를 국가에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대안을 구상해내고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그러나 이는 청년을 청년 문제와 보다 광범위한 사회문제의 해결 주체로 설정하고 스스로 문제를 책임질 수 있는 자립성과 능동성을 이상적인 청년상으로 상정함으로써, 의도치 않게 신자유주의에 적합한 주체화 기획과도 공명할 위험을 가진다. 청년 문제를 직접 해결하기 위해 나서는 청년 활동가들의 발명, “사회적 권리의 주체들이 자신들 스스로를 사회적 책임의 담당자로 변형시키는”(김주환, 2012: 211) 역설적 현상을 야기한다고도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지닌다. / 류연미(2014)
먼저, '청년-' 수식을 달고 나오는, 현재 담론들이 사실은 과거 사회가 청년에게 부여한 이미지를 여전히 내재하며 답습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고민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청년 활동가에게 '삶과 공동체의 문제를 열정적 , 혁신적으로 해결하려는 청년'의 모습을 부여하고 기대하는 것은 하나의 통치 전략이라는 내용도 살펴보았습니다. 활동하는 청년이 "'일반' 청년들과 구분되는 대안적 삶을 자발적으로 선택한 개척정신의 소유자" 라는 정체성을 스스로 내면화할 때 문제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이는 국가가 마땅히 수행해야 할 의사 결정과 책임을 청년 개인에게 전가하는 현상을 야기하며, 활동가의 노동자성을 가리고 청년 활동이 단지 하나의 라이프 스타일인 양 취급될 여지를 남깁니다. 그 속에서 청년 활동가는 거대한 사회 문제는 자신의 책임으로 떠안으면서도, 열악한 환경은 자발적 선택의 결과로 받아들이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 사회적 가치를 만드는 우리의 일을 설명하기 위해서
- 그러나 이 ‘청년-’ 용법은 때로는 어떠한 청년 활동가에게는 위로가 되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는 청년활동가가 처해 있는 현실의 열악함과 불만족스러움 때문이었다.
차은진은 자신의 활동 경력이 미래에 어떻게 의미화 될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을 가지고 있었다. 현재의 노동경험이 스스로에게 주는 것만큼의 긍정적 영향을 사회적으로도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이 있으나, 그녀는 그것이 가능할지가 의문이었다. 때문에 자신의 활동이 공적 언어를 통해 의미화될 수 있길 원하고, 그것이 청년 담론과 만났을 때 효과적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 청년들이 갖는 인정욕구와 사회적 위치짓기 욕구 사이에서, 청년이라는 범주화가 이들의 임파워먼트에 유용한 도구가 되어 주는 것이다.
- 학점, 영어시험, 각종 수상과 봉사활동 경력 등의 스펙이 기본이되는 현실 속에서 다른 트랙의 삶을 택한 그녀는,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이 경험에 대한 사회에서의 어느 정도의 인정도 가능하길 바란다. 그러나 ‘청년답게 열심히 사네’ 라는 독려마저 없으면 “힘든 것만 남는” 것으로 느껴질 만큼, 실제로는 그 노동의 현실조차 쉽지 않다. 이렇듯 역설적이게도 청년 활동가 당사자가 본인을 ‘청년’으로 소개하며 청년 정체성을 부각시키게 되는 건, 사실상 위로와 열정과 관련된 청년담론의 ‘수혜’에 지금의 힘듦을 맡기고 싶기 때문이기도 한 것이다. / 이영롱,명수민(2014)
😌 그럼에도 청년의 문제는 존재하기에
- (...) 말하자면 청년허브가 관리하고자 하는 한국사회의 청년이란 통치 대상으로서의 청년 실업자이기보다는 의식화 대상으로서의 성찰적·실천적 청년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이는 청년허브의 고안 과정에서 반영된 의견이 누구에 의한 것인지, 그리고 현재 청년허브를 운영하고 있는 주체들이 누구인지와 무관하지 않다. 앞에서 보았듯 청책토론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청년들은 대부분 청년운동의 당사자였으며, 청년허브 조성 TF 회의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하자센터, 함께일하는재단 등 시민운동조직의 주요 구성원이었다.
공식적으로 청년일자리 전담기관인 청년허브는 서울시 청년고용대책의 연장선상에서 논의되지만, 실질적으로 이곳은 시민운동의 주요 아이디어들이 작금의 청년문제를 중심으로 사업화되어 청년 당사자들을 통해 실현되는 공간으로 나타난다.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라는 오랜 딜레마는 제도화를 통해 자원, 공간과 인력을 확보함으로써, 대안적 삶을 갈망하고 있던 청년들에게 유력한 선택지로 재등장하게 된다. / 류연미(2014)
통치 논리로 작동할 수 있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청년-' 수식은 사회에 청년의 자리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것은 청년 개인과 담론 모두에 해당합니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일을 설명하는 공적 언어가 충분하지 않습니다.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도 그것이 언어로 의미화되지 않는 상황에서, '청년-' 으로 만들어지는 자리는 활동가들이 자신의 일과 삶을 범주화하고 설명할 수 있는 안정된 소속을 제공합니다.
또한 한국에서 청년 활동의 성립이, 행정의 호명이 아닌 청년 당사자들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이 맥락에서 '청년-' 수식을 통치 논리로 여기기 보다는, 청년 문제 해결을 제도화하기 위해 필요했던 명명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질문 😮
- 스스로를 '청년'이라고 정의하시나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 청년 활동가의 '청년-' 수식은 필요할까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 이번 내용에 대한 자유로운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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